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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개의 선

YES 2018. 1. 8. 23:51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두 개의 선>

 

열 네살 때부터 붙어다니던 친구가 이번 주말, 부케를 받는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며칠 전 애인과 헤어진 그녀는 '남자 없이 부케 받는 심정'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스물 다섯을 넘기던 그 즈음부터 우리는 부쩍, 애인과의 관계, 미래, 결혼 등에 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해왔다. 그녀는 전 애인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자 마치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마냥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부케'라니. 6개월마다 부케를 새로 받아 "다음 신부"로의 의무를 연장해야 한다는 그녀의 하소연에 나 역시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회에, 우리는 그런 20대의 여성으로 살고있다. 알게 모르게, 연애가 개인의 능력처럼 치부되는 사회. 사랑과 연애마저 하나의 개인적 스펙처럼 여겨지는 이 사회에, 그녀는 사랑이 고프고 연애가 고프다. 남들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영화 <두 개의 선>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시작부터 연애 결혼 비혼 임신 출산 육아 등 한창 친구들과의 대화에 화두가 되고있는 소재로부터 출발하고 있어, 몰입도가 굉장히 높았다.

 

지민 감독은 프로듀서인 철을 만나 오랜 연애 후 동거를 하면서 비혼커플로서 출산하게되는 자전적 이야기를 80분짜리 장편영화로 영화화했다. 대략의 영화내용을 먼저 짚어보자면, 두 남녀가 사랑하여 함께 살게 되었고, 굳이 결혼하지 않고 살아보고자 했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임신과 아이의 건강문제 등 여러가지 현실적 문제에 봉착하면서 그들도 결국 결혼 제도 하에 놓이게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그러나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과 달리 그 단순함 속에서 감독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못 냉정하고 날카롭다. 과연 이 사회에서 결혼은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그녀는 20대 후반의 나이로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면, 모두 결혼 상견례 혼수 예단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다고 전한다. 모두가 '결혼적령기'라는 제2의 네임을 달고 결혼을 의무처럼 여긴다. 먼저 시집간 친구들은 경험담을 이야기하느라 바쁘고, 애인이 없는 친구들은 조바심을 낸다. 연애와 결혼은, 이 사회 구성원이 되기 이ㅜ해 거쳐야하는 필수 수단이며 의무, 책임인 듯 말이다. 마치 결혼하지 않으면, 연애하지 않으면 능력이 부족해서, 혹은 자격이 부족해서 사회에서 낙오되는 듯. 모두가 당연하듯 결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에 대해 확정한다. 문제는 이런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지민 감독의 개인사와 부딪치며 일어난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이 아버지와의 이혼을 원했고, 비로소 몇 해 전 이혼을 할 수 있게 되셨다는데, 그녀의 머리 속에는 사랑이 변하고 사람이 변했다기 보다는, 이 가부장제 속 결혼제도가 서로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변하게 한 것이란 인식이 강하게 자리하게 된 것이었다. 즉 현 결혼제도 하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적으로 변하게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불합리한 제도인 결혼은 선택의 문제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관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한다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야 '정상'범주라고 생각하지만, 지민감독은 우리가 정상이라 일컫는 그 정상범위가 얼마나 협소한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해서 한 쪽은 아이를 낳고 아이를 그리고 또 한 쪽은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식의 전통적 성역할이 바로 지민 감독이 결혼제도를 거부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그녀에게 두려운 것은 이미 고정된 사회관념, 인식 그 모든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시도에 대해 나는 큰 소리로 박수쳐줌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문제를 내 문제로 치환시켰을 때 떠오르는 그 실체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어느 개인의 삶을 통해 이 견고하고 두터운 사회제도, 인식의 틀을 파괴해보고자 하는 시도는,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마냥 둔탁한 느낌이지만 그렇기에 비장하고 또 눈물겹다. 우리가 규정해놓은 정상 범위의 가족들, 엄마 아빠와 아빠의 성을 가진 자녀들만이 정상가족인 것일까. 우리는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들에게 정상 혹은 비정상을 명명할 자격이 있는가. 그녀가 시사하는 문제는 비단 남녀간 혼인의 문제를 넘어서, 동성애 커플이나 입양가족과 같은 사회 전반의 모든 이슈들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가지 양태의 가족형태를 단 한 가지 모습으로 박제시켜 정상 혹은 비정상으로 못박을 수 있는 것인가. 그녀의 문제제기는 마치 결혼을 20대의 의무이며 스펙처럼 치부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정상적인 20대가 되고자, 어서 애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싸인 주변 지인들에게도, 이런 맥락에서 나는 다른 충고를 해주었어야 옳았다. 나 역시 남들처럼 필요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적당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정상이라 여겼던 것 같다. 우리는 곧 결혼 적령기라 부르는 시기에 돌입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를 불안 속에 몰아붙였고, 그 가운데 그녀는 결혼할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크게 절망한 것이다. 나 역시 솔직한 마음으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참 다행이다, 하는 치졸한 생각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그 모래알 같은 마음이 참 부끄러워진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영화 속 한 장면 때문이었다. 행복한 동거를 하고 있던 지민, 철 커플은 어느 겨울 날 농구 골대 앞 눈길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다. BGM은 결혼 행진곡. 그들은 남들이 중시하는 제도적 기준인 혼인신고나 성대한 결혼식은 치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마음으로 서로의 사랑을 통해 하나가 된, 진정한 부부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도, 지인에게 보여줄 결혼식도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별한 벗이 안타까워야했던 건 그녀가 결혼할 상대를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래도록 마음을 준 이와의 이별, 그 자체여야했던 것인데.. 결혼하기 위한 누군가가 아니라,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주목했어야 하는ㄱ너데.. 너무 부끄러워 친구에게 연락조차 미안해지던 순간이었다.

 

여하간 지민감독과 이철 프로듀서의 이야기는, 출산 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이의 장에 문제가 생겨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정한 정상가족 범위 내에 편입되어야만 했다.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 비혼커플로 또 다른 형태의 가정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아이의 병과 함께 죄책감으로 비화되어 위기를 맞는다. 당시 실제 아이의 수술 전후에 영화제작을 포기했을 정도로 힘들었다던 그들은, 끝내 남들처럼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의 성을 아버지인 이 씨로 지으며 감독의 의도는 일단락되고 만다. 표면상으로는 경제적 이유, 즉 아이의 수술비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제도 하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는 비단 경제적인 이유때문 이라기 보다 국가가 쳐놓은 정상범위의 덫이 얼마나 견고하고 튼튼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남녀와 몸이 아픈 신생아. 이 나약하고 힘없는 개인들은 국가가 정한 제도의 범위 내에 편입되지 않으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일 조차 위협받게 된다. 복지라는 기본적 혜택이, 결혼이라는 개인의 선택에 의해 가부가 결정되는 상황. 이들이 이 견고한 국가의 틀 안에서 무릎꿇고 정상가족임을 증명해야만 겨우 아이를 살릴 수 있고, 그렇게 그들은 무력하게 결혼을 선택 당한다.

 

진정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지민 감독의 어머니 인터뷰 가운데, 사람이 살다가 헤어지고 싶은 순간이 와서, 두 사람이 헤어지겠다고 하는데, 어째서 국가가 나서 숙려기간이란 간섭을 자행하는가, 하는 부분이었이 인상깊었다. 언제부터 개인의 영역에 국가의 힘이 이토록 무섭게 작용하는가. 자연스레 사랑하고 이별하는 개인사. 결혼을 통해 서로에게 책임을 묶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어야 한다. 왜 반드시 결혼제도 하에 놓여야만 정상이 되는가. 이 견고한 사회인식의 틀 앞에 지민감독은 좌절해왔던 듯 하다. 그리고 그녀의 이 제도 거부 노력이 아이의 병 앞에 무너지는 순간, 그녀의 무력감 또한 폭발하듯 터져나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GV시간을 통해 남들처럼 결국 똑같이 된 건ㅅ인데, 이럴바에야 의무도 책무도 다 던지고 자유롭게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이혼을 고려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그 행복감의 표시로서 결혼식과 유사한 이혼파티의 개최 여부까지 고민했다는 것. 대단하다. 그녀의 끝없는 제도 파괴시도. 인식 변화 시도. 기실 지민 감독 역시 어릴 적 노출된 특수한 가정환경 탓에, 어린 시절 만큼은 남들과 같아지고 싶어 괴로웠다는 말이, 러닝타임 내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그만큼 많은 삶들이 한 두가지 기준에 의해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뜻이며, 그만큼 감독은 제도를 파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임을 생각할 수 있었다. 통상 '서른 전에' 와 같은 강박이 비로소 느슨해지는 순간이 왔고, 결혼이란 책임과 의무는 우스운 일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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