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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교통과 시끄러운 환경, 더운 날씨. 베트남의 이미지다. 최근 전공수업에서 베트남 전쟁을 다루면서 요 며칠간은 베트남 전쟁이 먼저 떠오르긴 했지만, 여하간 못사는 나라 이미지다. 기껏해야 최근 몇 년 사이 인기를 끌었던 음식, 쌀국수와 월남쌈이 떠오르는 정도. 굳이 기억을 들추자면 베트남 전쟁, 어른들이 말하는 월남전-에 우리 군 역시 파병했다는 점을 들 순 있겠지만, 베트남이란 국가에 구태여 연결고리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화 <길 위의 또 다른 여행자들>은 라이따이한과 최근 다시 수가 불고 있는 신라이따이한을 조명한 영화로, 고교시절 알게 된 라이따이한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떠올리게 해줬다. 알면서도 타인의 일로 치부했고, 기억 저편으로 밀어냈던 그들의 존재. 나 역시 그들에게 죄의식을 가져야할 또 다른 가해자였다.

 

주인공인 치는 애인 승진의 아이를 가졌다. 승진은 한국사람으로, 금방 돌아온다는 말만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라이따이한으로서 베트남에서 차별을 받으며 자라온 치는 자신의 아이마저 라이따이한으로 자라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젊은 시절에 베트남에 아이를 낳아두고 온 박사장이 중병에 걸려 베트남의 딸을 보고싶어하고, 또 다른 주인공인 한국인 두일이 그런 박사장의 딸을 찾으러 베트남에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흥신소를 통해 치를 만난 두일은 다짜고짜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한국으로 데려가려 하지만, 치는 선뜻 나서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시작해 애인 승진에게로 이어져오는 한인으로부터의 상처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치는 두일에게 애인 승진을 찾아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면서 이들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한국의 박사장이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으며, 이들의 여행도 난관에 부딪친다. 결국 베트남에 무방비로 내버려진 그들은 길 위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어려움에 처하자 두일은 치를 버리고 홀로 떠난다. 그러나 지리는커녕 베트남어조차 하지 못하는 그는 짐마저 잃고 다시 치를 찾아온다. 다시 버림받은 치의 마음에 이미 베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시 생채기가 났다. 그러나 그녀는 오갈 곳 없는 두일에게 잠자리를 주고 맥주를 나누어 준다.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그들이 하릴없이 나란하게 앉아 맥주를 비우는 장면에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며 대화조차 할 수 없지만 나란히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한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서로. 날이 밝자 두일은 또 다시 그녀를 남겨두고 떠나야했다. 그녀의 상흔을 보고도 결국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야하는 것이다. 없는 형편의 치를 알면서도 그녀의 돈을 받아들고, 그는 떠난다. 또 다시 길 위에 홀로 남겨진 치는, 떠나는 모든 한인들의 뒤에 남겨졌다. 다시. 언제까지고 기다림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녀. 그들의 질긴 외로움과 끝없는 기다림은, 그렇게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져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시장통같은 거리에서, 그들은 다시 섰다. 각자 다른 곳을 향해.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 배우들이 모였다. GV시간이었는데, 감독은 많은 사람들에게 라이따이한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덧붙이며, 실제 라이따이한들은 한인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기보다는 욕하고 원망한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한인들은 어째서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관객이 영화를 접하고 라이따이한의 현실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 좋겠다 했는데, 인터뷰 내내 라이따이한의 존재를 알면서도 의식하지 않고 죄책감 조차 느끼지 않고 지냈던 나 스스로를 가해자라고 느끼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자녀를 만들고 그냥 돌아온 그들이 직접적인 가해자였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의 존재를 인지했음에도 타인의 일이라며 그들의 상처를 외면해온 나 역시 간접적인 가해 한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소인배. 베트남이란 국가에 대해 고작해야 쌀국수나 월남쌈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들의 원망과 한은 외면한 채.

갈등의 문제는 대부분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불편한 진실은 언제나 곧이 보기 힘들다. 기독교인들은 중세에 돈과 거래된 면죄부의 존재를 감추고 싶어하고, 연옥의 탄생을 숨기고 싶어한다. 연인들은 다툼을 피하고 싶어 잘못을 감추고 상대의 허물을 들춘다. 그렇게 불편하고 껄끄런 진실과 사실들은 왜곡하고 은폐하려 할 때, 갈등이 생기며 삐걱댄다. 수많은 한인들이 가해자로서, 라이따이한을 곧게 바라보지 않고 외면하려 할 때, 그들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언제까지고 한인들을 욕하고 원망하게 만들 수만은 없다. 매주 수요일마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시위가 대사관 앞에서 일어난다. 할머니들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름 아닌 사과다. 혼란의 시대에 일어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에 사실을 곧이 곧대로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우리 할머니들의 절절한 요구처럼, 우리는 라이따이한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책임감있게 접근해야한다. 타인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이전에, 우리에게 묻은 허물이 없는지 먼저 돌아보고 살펴야한다. 베트남전쟁, 그 혼란의 시기에 태어난 비극적 생명들이, 더 이상 우리에게 상처받지 않도록, 우리는 철저하게 반성하고 사죄해야한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라이따이한들의 한을 어루만지는 첫 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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